LA 불법이민자단속시위 5일째… 상점약탈등연일격화

10일(화) 오전, 한인 업소들이 밀집한 LA 다운타운 거리에는 평소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평일이면 손님과 직원들로 북적일 골목은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헬리콥터의 저공 비행음만이 울려 퍼질 뿐,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였다.

이는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5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인 커뮤니티의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LA 폭동의 아픔과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의 여파를 경험한 한인사회는 이번 사태의 한인타운 확산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ICE의 단속 첫날인 지난 6일,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내 한인 의류업체 ‘앰비언스 어패럴’이 급습을 받아 10여 명의 직원이 체포된 사건 이후, 한인 업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일부 업주는 직원들을 조기 퇴근시키고 매장을 임시 폐쇄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주는 “국토안보부와 FBI 요원 40여 명이 매장에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인근 업소들도 급히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한편, 의류업 외에도 건설업, 요식업 등 라틴계 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 종사하는 한인 업주들 역시 연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체류 신분 불안으로 출근을 꺼리는 라틴계 직원들로 인해 심각한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으며, 시위 여파로 도심 접근성도 낮아져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샌피드로 지역의 한 의류 도매업체 대표는 “직원의 대부분이 라틴계인데 단속 이후 출근률이 떨어져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한 마켓 업주는 “다운타운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가족의 체류 신분 문제로 불안을 느끼며 출근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들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앤젤러스 플라자에 거주하는 최애림(85) 씨는 “TV 뉴스에서 불타는 차량을 보고 1992년 폭동이 떠올랐다”며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외출을 자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LA 한인회와 LA 총영사관은 10일 오전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ICE 단속 반대 시위에 따른 안전 대응’을 주제로 커뮤니티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했다. 간담회에는 한인상공회의소, 건설협회, 의류협회, 변호사협회 등 다수의 단체가 참석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고용주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캐런 배스 LA 시장도 직접 참석해 “1992년 폭동을 겪은 한인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는 LA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시는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시위로 발생한 피해 보상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김영완 LA 총영사는 “한인들의 안전과 재산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정보 공유와 연락망 유지를 통해 실질적인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총영사관은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 현장 접근 자제를 당부하고, 피해 접수 및 지원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 중이다.

한인사회는 과거 유사 사태에서 심각한 피해를 겪은 전례가 있다. 1992년 LA 폭동 당시 2,300여 개의 한인 소유 업소가 피해를 입거나 전소됐으며, 피해액은 4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당시 LA 전체 재산 피해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태 때도 한인타운 내 50여 개 업소가 약탈 및 파손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 8일, X(구 트위터)에 ‘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이라는 문구와 함께 1992년 폭동 당시 무장한 한인 남성의 사진을 게시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LA 한인회는 9일 즉각 성명을 내고 “한인사회의 집단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ICE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는 점차 격화되어 일부는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9일 밤, 브로드웨이 인근의 애플스토어, 아디다스 매장, 보석상, 약국, 신발 가게, 마리화나 판매점 등에서 약탈과 방화가 발생했으며, LAPD는 화염병과 폭죽을 던지는 시위대에 대해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강경 대응해 100여 명을 체포했다.

ICE는 단속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항의 시위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 2,000명과 해병대 병력 700명의 투입을 명령했으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에 대해 연방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LA시는 10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다운타운 일대 1제곱마일 구역에 통행금지를 발령했으며, 배스 시장은 “약탈과 방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며 “필요 시 추가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통행금지는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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